야곱 이야기 7 인생이라는 씨름판에서(창세기 32:24-32)

요즘 우리 사회에 절망을 안겨주는 사건들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악한 자들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끼리끼리 천문학적인 돈을 해먹은 일입니다. 정상적인 방법인지 아닌지는 좀 더 밝혀야 하겠지만, 정직하고 바르게 살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대다수의 시민들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박탈감과 절망감을 주고 있습니다. 정직하게 살면 뒤처지게 되고, 바르게 살려고 하면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 속에 살고 있습니다.

얍복, ‘씨름꾼이라는 뜻입니다. 얍복 나루는 야곱이 인생을 걸고 밤이 새도록 한바탕 씨름을 벌였던 곳입니다. 야곱, 이 이름은 발꿈치를 잡았다는 뜻입니다. 넘어뜨리는 자를 이르는 이름인 것입니다. 인생은 넘어뜨리느냐 넘어지느냐, 쓰러뜨리느냐 쓰러지느냐 하는 씨름판이며, 죽이느냐 죽느냐 하는 전쟁터를 방불합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손에 무너져버릴 자신이 두려웠습니다. 어렵게 일구어 놓은 성공을 한순간에 다 날려버릴 수도 있는 절대 절명의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지난 날 야곱은 형 에서와의 경쟁에서 당당한 승리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겁한 승리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성공할 수만 있다면, 부자가 될 수만 있다면 비열하단 소릴 들어도 야곱의 길을 택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은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뀌는 특별한 순간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 안에서 야곱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깨달음과 교훈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내 모습 이대로 부르셨지만, 내 모습 이대로 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보시고 아셨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의 손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형을 이겨보려고 기회를 노리던 야곱의 교활함을 알고 계셨습니다.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채기 위해 형 에서를 가장하여 아버지에게로 들어가던 그 뻔뻔한 야곱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보십시오.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인을 있는 그대로 부르시지만, 계속 죄 가운데 사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생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기 이전의 옛 사람과 옛 생활은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태어나야 합니다. 거듭남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듭났습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을 넘어 카이로스의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시간입니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특별한 시간을 말합니다. 우리는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인생의 변화는 크로노스 속에서가 아닌 카이로스의 시간 속에서 일어납니다. 야곱이 씨름했던 어떤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호세아서에 이렇게 밝혔습니다.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12:3-4) 어떤 사람은 곧 하나님이 보낸 천사였고, 그를 이긴 것은 곧 하나님을 이긴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어다”(12:4-6) 야곱의 씨름은 눈물의 씨름이었습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하나님은 그이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셨고, 축복해 주셨으며, 눈물의 밤을 보낸 야곱에게 브니엘의 새아침을 맞이하게 하셨습니다. 날마다 오는 아침이 아닌, 특별한 아침이었습니다. 지난날에 수없이 맞았던 밤과 아침이 아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가진 밤과 아침이었습니다. 인생의 밤에 눈물로 매달리며 간구한 사람에게만 특별한 브니엘의 태양이 떠오릅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